사람의 성(性)과 교육의 필요성 간상(赶上)/보충(補充)2010. 2. 20. 19:51
인간도 동물입니다.
‘고도의 지능’이라는 특이한 성(性)을 부여받은 동물입니다.
특이할 뿐인데, 특별한 존재로 구별하려는 시도가 많았습니다.
정(情)이라는 것은 인간의 성(性)이 아니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에게서 정(情)이 떨어져나가면 인간은 기계가 되고,
인간에게서 이성(理性)이 떨어져나가면 인간은 동물이 됩니다.
역사적으로 쾌락주의와 금욕주의가 순환하고 있고,
유학의 발전과정도 그러했습니다.
흥에 취하고, 신나하고, 울먹이던 공자와 달리,
맹자는 단단했고, 한번도 ‘음악’에 대해서 논한적이 없었습니다.
감성과 이성의 중용을 이탈하여, 이성중심으로 흘렀고,
조선조의 선비는 판박이 기계의 모습으로 꽉 막힌 사람들이 되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情)으로 치우치면, 인간은 동물로 접근해 갑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구별되도록 하기 위해
하늘이 명(命)하여 준 차별화된 성(性)은 ‘고도의 지능’입니다.
이 녀석은 참으로 위대하지만, 참으로 위험합니다.
불가능을 모르고, 한계를 모릅니다.
인간을 기계보다 더 한 기계로 만들 수도 있고,
인간을 동물보다 더 못한 생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결국은 유학의 배움은, 하늘이 준 ‘고도의 지능’을
치우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중용(中庸)에 맞추는 것입니다.
‘고도의 지능’은 해야할 자기 역할이 있습니다.
‘귀’를 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해야 할 역할은 짐승과는 다르게, 기계와도 다르게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들을 수 있는 능력은 다르지만, 귀가 맛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이 ‘고도의 지능’은 제 한계를 모릅니다.
이 괴이한 녀석을 그대로 방치해 버리는 것은,
눈이 들을려고 애쓰게 만드는 것과 같고,
귀가 냄새를 맡으려 애쓰게 만드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면, 모든 조화가 깨어지고 부서져 버립니다.
그래서 중용 제1장에서 강조합니다.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늘이 명하여 준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고 하고
도를 행하도록 다듬는 것을 교(敎)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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