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을 취한다 간상(赶上)/보충(補充)2010. 2. 20. 20:04
맹자의 「성선설」, 순자의 「성악설」로 대표되는 성론(性論)에 대해서는 단순히 설명하기가 불가능하고, 학자가 아니라면 굳이 파고들 이유도 없겠지만,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는 것이기에, 간략히 언급하고 지나가겠습니다.
앞의 글에서 강조했지만, '중용'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찾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다원적인 ‘맞춤형 진리’를 추구합니다.
어떤 분은 공자께서는 「성삼품설」을 주장하였다며, 논어 제17편 양화 제3장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가장 총명한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만 바뀌지 않는다
이 가르침의 의미가 성삼품설의 논거라고 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가장 총명하고 가장 어리석은 두 사람만 빼고는 '모두 변화할 수 있다'는 의미가 본래 담고 있는 속 뜻일 것입니다.
「전습록」에 의하면 가장 총명한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도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바뀌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애공이 정치의 조언을 구하자 공자께서는
'곧고 올바른 사람을 부정직한 사람 윗자리에 두는 것'을 말씀합니다 [논어 제2편 위정 제19장]
즉, 부정직한 사람을 축출하거나 버리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변화의 가능성을 잊지 않으려 하며, 함께 잘 되는 것을 도모합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신 성선설을 일반적 진리라는 의미로 해석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장점만을 취한다'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옛 문헌들에 나타나는 공자의 제자들을 한번 보겠습니다.
자로는 끝까지 급하고 용감합니다. 그 기질 때문에 결국 살해당해 죽게 됩니다.
자공은 끝까지 총명하고 활달함을 잃지 않습니다.
증삼은 끝까지 근신하고 느리며, 재아는 날래고 괴팍합니다.
다른 모든 제자들도 그 기질이 바뀐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공자께서는 기질이 지나치지 않도록 경계는 시켰으나 억누르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각자의 장점을 더욱 북돋아 주었습니다.
사람은 똑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나 부족한 점이 있고 나은 점이 있습니다.
공자께서도 안회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점을 언급하십니다.
「장점을 취한다」는 것은 유학에서 아주 중요시 하는 가르침입니다.
공문자는 태숙질을 이혼시키고 자기딸을 시집보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공자께서는 '문(文)'이라는 칭호를 내립니다.
자공이 의아하여 그 까닭을 묻습니다. [논어 제5편 공야장 14장]
그는 부지런하며 배움을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수치로 생각지 않더구나
삼인행(三人行)의 가르침은 너무도 유명합니다. [논어 제7편 술이 제22장]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착함은 따르고, 나쁜점은 바로잡는다.
고전을 배우면서 좋은 가르침이 있으면, 그것을 취해 나의 배움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배움보다 공자라는 ‘인물’에 집착하기도 합니다.
공자의 그 내심을 알 수도 없을 뿐더러, 크게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공자의 사람됨에 관계없이, 그 가르침이 깨우쳐 주는바가 있다면 그것을 취할 뿐입니다.
기독교, 불교가 좋고 나쁘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성경과 불경의 가르침이 좋다면 그것은 취해 배움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배움의 중용입니다.
‘사람에게 집착’하여 못나게 만들고 미움의 근거로 삼으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설령 그 말이 이완용에게서 나왔더라도 바른 말이라면 배우는 것이며,
설령 그 말이 공자로부터 나왔더라도 바르지 않다면 버리는 것입니다.
왕양명의 유명한 말이 그런 뜻입니다.
마음에 구하여 옳지 않다면, 그 말이 공자로부터 나왔더라도 옳다 할 수 없다
『논어』를 읽고 바른 가르침과 지혜를 배우려는 것이 아니라,
공자를 흠모하거나, 공자를 미워하는 증거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불가의 법어인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 끝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군자는 말만 듣고 사람을 받들지 않아야 하며,
사람이 좋지 않다고 그의 바른 말을 버려서도 안된다 [논어 제15편 위령공 제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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