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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4. 14:46

삼인손일(三人損一) 기타(其他)/명언(名言)2010. 3. 4. 14:46

  사자성어를 선호하기 때문에 줄여표현 하곤 하는데 원문은『주역』 손(損)괘의 세번째 효사입니다. 전체 원문을 소개하면 「삼인행즉(三人行則) 손일인(損一人), 일인행즉(一人行則) 득기우(得其友)」입니다. 이것을 줄여 삼인손일(三人損一) 일인득우(一人得友)라고 합니다. 해석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세명이 나아가면 한명을 잃고, 한명이 나아가면 친구를 얻는다’는 말입니다.

 

보통은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말라’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서 인용합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더 가까워지는 두 사람 때문에 한 사람은 떨어져 나가기 마련입니다. 실재의 사람이 3명이 아니라 가상의 사람이 등장해도 그러할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층에서 유행하는 엄친아(엄마 친구의 아들)라는 말도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요? 엄마와 딸의 대화에 잘난 엄마친구의 아들이 끼어들면 딸아이는 엄마에게서 떨어져 나갑니다.

일인득우(一人得友)까지 언급하고 가겠습니다. 엄마와 딸의 대화에 엄마가 스스로를 잊고 딸과 한마음이 되면(1人)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털어놓은 딸이 엄마를 찾으려 옵니다. “엄마는 속상하는 일 없어?” 그래서, 엄마는 친구를 얻었습니다(得友).

 

종종, ‘작은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뜻으로 인용합니다. 3은 고래로부터 많음을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3인은 많은 사람이 모인 큰 조직을 상징합니다. 거대한 단체는 의견이 분분하기 마련이고, 1인(소수)의 목소리를 무시해야 할 필요가 생기기도 합니다. 모든 입장을 다 수용하고는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석할 경우에는 일인득우(一人得友)는 작은 조직은 동지를 얻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즉, 큰 집단은 덜어내면서 내실을 다져야 하는 것이고, 작은 집단은 우선 규모를 키우는 것이 나아가는 순서라는 의미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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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畜 利貞 不家食 吉 利涉大川
【初九】有厲 利已
【九二】輿說輹
【九三】良馬逐 利艱貞 曰閑輿衛 利有攸往
【六四】童牛之牿 元吉
【六五】豶豕之牙 吉
【上九】何天之衢 亨

  주역의 아홉번째 괘 소축(小畜)은 가정에서의 성취를 뜻하여 임신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대축(大畜)괘는 사회에서의 성취를 뜻한다. 윤봉길 의사께서 말씀하신 이상(理想)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理想)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理想)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靑年時代)에는 부모(父母)의 사랑보다 형제(兄弟)의 사랑보다 처자(妻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江山)과 나의 부모(父母)를 버리고 라도 그 강의(剛毅)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決心)하여 이 길을 택(擇)하였다”[윤봉길 의사 어록]

 

大畜 利貞 不家食 吉 利涉大川
큰 성취(大畜)는 열매를 맺고 마감하는 시기(利貞)의 일이니, 가족의 먹이는 것이 아니라야(不家食) 길(吉)하고, 큰 강을 과단성 있게 건너야 이롭다(利涉大川)
  소축은 성장기(亨)에 의욕해야 하는 일이며, 대축은 열매를 맺고 마감하기 위해서(利貞) 이뤄야 하는 일이다. 모든 일은 때가 있는 법이다. 대축은 소축과 달리 가정에서 이루는 것이 아니니 가족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야 하고, 과단하게 나아가야 이롭다. 윤봉길의사께서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즉, '대장부가 집을 저버리고 나서니 살아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자식으로서의 도리, 남편으로서의 도리, 아버지로서의 도리를 못하고, 집을 나서니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라는 말씀이셨다. 가족을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는 모든 일은 근본과 말단이 있다. “모든 일은 근본과 말단이 있으며, 시작과 마침이 있으니, 먼저 할 것과 뒤에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대학 제1장]

 

有厲 利已
위태로움이 있구나(有厲)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함이여(利已)
  대축(大畜)은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는 소축(小畜)과는 다른 것이요, 사회적인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다. 성장기를 지나서 열매를 맺고 마감해야 할 시간에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하늘(시간)의 이치를 모르는 것이요, 땅(자리)의 이치를 모르는 것이니 위태로움이 있는 것이다. 공자께서 꾀꼬리를 보시고 “머무를 때에 그 머물러야 할 곳을 아니 사람이 새 보다 못할 수 있으랴!”[대학 제3장]라고 하셨다.

 

輿說輹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함은 수레에서 바퀴가 빠져버린 것과 같다(輿說輹) 
  앞 효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대축은 열매를 맺고 마감하기 위해서(利貞) 이뤄야 하는 일이다. 모든 일은 때가 있는 법이다.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소축(小畜)을 이뤄야 할 시기 곧 형(亨)의 시기에 의욕 해야 하는 일이다. 대축을 이룬다면서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려는 것은 수레에서 바퀴가 빠져버린 것과 같은 어긋남이다.

 

良馬逐 利艱貞 日閑輿衛 利有攸往
좋은 말은 달려야(良馬逐) 하는 것이니, 끝까지 어려움이 있더라도 달려야 이로운 것이다(利艱貞) 날마다 수레를 세우면서(日閑輿衛) 시간을 보내야 이롭다(利有攸往)
  하늘은 사람을 내면서 임무를 맡기셨다고 했으니 곧 맡은바 사명을 부여하셨다. 말이 달려야 하는 것처럼 사람도 사명을 다하여야 한다. 말이 잘 달리기 위해서는 수레가 튼튼하고, 바퀴가 잘 맞아야 한다. 늘 세우고 점검하는 철저한 준비성과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니, 사람도 사명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준비와 대비를 철저히 하고 신중하여야 한다.

 

童牛之牿 元吉
송아지의 뿔은 사람을 찌르지 못하도록 해 두어야(童牛之牿) 근원적으로 길하다(元吉)
  송아지는 냉정하지 못하고 혈기가 잘 제어가 되지 않는 사람을 비유한다. 대축은 혼자서 도모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마땅히 어울려 나아가야 하는데, 송아지는 그 혈기를 감당하기 어려워 그 뿔이 자신을 다치게 하고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므로 나무토막을 대어 방비를 해 둔다. 그런 부류의 사람과 함께 하려면 단속이 필요하다.

 

豶豕之牙 吉
거세한 돼지는 잘 먹여야(豶豕之牙) 길(吉)하다.
  돼지의 수컷은 거세를 해야 냄새가 없어지고 고기가 연하게 된다고 한다. 거세를 했다는 말은 대축을 이루기 위해서 희생을 한 것을 말한다. 그 희생을 모른 척 하지 말고 잘 먹여주어야 한다는 말이니, 논공행상을 잘 해야 끝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何天之衢 亨
하늘의 뜻을 알고 따라야(何天之衢) 형통(亨)한다. 
  하늘의 준 사명이 있는데, 다른 일을 도모하는 것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는 일이 막히기만 하고 잘 풀려나가지 않으면 하늘이 크게 쓰려고 시련을 주는 것인지, 아니면 물을 거스르고 있는 것인지 하늘의 뜻을 헤아려 보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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无妄 元亨利貞 其匪正 有眚 不利有攸往
【初九】无妄 往 吉
【六二】不耕 穫 不菑畬 則利有攸往
【六三】无妄之災 或繫之牛 行人之得 邑人之災
【九四】可貞 无咎
【九五】无妄之疾 勿藥 有喜
【上九】无妄 行 有眚 无攸利

  사람에게 고기를 주기 위한 것으로 명이 바뀐 동물이 있고, 사람의 치장을 위해, 사람의 건강을 위해 멸종에 이르는 동물도 있고, 인간 거주의 편의를 위해 없어지는 산과 강이 있다. 주역은 인간의 탐욕으로 자연(自然)이 파괴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자연 곧 천도(天道)가 무너지면 인간 역시 생존하지 못한다. 무망(无妄)은 하늘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니, 천도(天道)에 순응하는 것을 뜻한다.

 

无妄 元亨利貞 其匪正 有眚 不利有攸往
천도에 순응(无妄)하여야 원형리정(元亨利貞)의 순탄한 변화를 겪을 수 있다. 천도에 순응하는 그 바름을 따르지 않는다면(其匪正) 재앙이 있으리니(有眚) 천도를 거스르며 시간을 보낸다면 이로울 것이 없다(不利有攸往)

  씨앗이(元) 자라서(亨) 열매를 맺고(利) 죽게 되는(貞) 순탄한 변화의 과정을 겪으려면 시간과 공간과 사람과 노력 등등이 필요하지만, 또 하나 필요한 것이 무망(无妄)이다. 주역은 하늘(시간)외에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했으니 인류도 언젠가는 종말을 맞게 될 것 같다. 인간에게 주어진 지능으로 인해서 오히려 멸할 수 있는 위험이 있으니, 뛰어난 지능으로 인해 하늘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생명이 태어나서 죽게 되는 것은 하늘이 주관하는 일이지만, 고기를 먹기 위해 생명을 만들고 생명을 죽이고 의자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어버리니 다른 생명이 천수(天壽)를 누리지 못하도록 하면서 스스로는 천수(天壽)를 누릴려는 중용을 벗어난 모순을 꿈꾸는 것이다. 공자께서 “사랑하는 이는 살기를 바라면서 미워하는 이는 죽기를 바란다면 살리기를 원하면서 죽이기를 원하니 이것은 모순인 것이다”[논어 제12장 안연 제10장]라고 하셨다. 사람이 인위(人爲)로 천수(天壽)를 주관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천수(天壽)를 끊어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无妄 往 吉
천리에 순응하여(无妄) 나아가야(往) 길(吉)하다.
  누구나 보전된 자연(自然)을 보면 아름답게 여기고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자기의 이익과 관련되면 곧 그 자연(自然)이 없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니 곧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의 탐욕이다. 공자께서 “멀리 내다보고 고민해 보지 않으면 반드시 근심이 가까운 날 생길 것이다”[논어 제15편 위령공 제12장]라고 하셨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 것은 경계해야 하며, 하늘을 두려워 해야 한다.

 

不耕 穫 不菑 畬 則利有攸往
밭을 갈지 않아도(不耕) 얻을 수 있고(穫) 개간하지 않아도(不菑) 경작할 수 있으니(畬)  그렇게(則)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이로움이 있다(利有攸往).
  주역은 인간이 조작하지 않아도 자연이 배려한 자연 생산물로 살 수가 있다고 한다. 생태계가 그러한 조화를 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도가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그렇게 강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호랑이는 배가 부르면 토끼를 잡아먹지 않는다. 만약 호랑이에게 인간의 머리를 주었다면 호랑이는 두고두고 먹으려고 토끼를 잡아 비축해 두고자 경쟁했을 것이기에 벌써 생태계의 조화가 무너져 버렸을 것이다.

 

无妄之災 或繫之牛 行人之得 邑人之災
무망의 재앙은(无妄之災) 누군가가 매어둔 소를(或繫之牛) 지나가는 행인이 가져가서(行人之得) 고을 사람들이 의심을 받게 되는 재앙(邑人之災)이다.
  천리에 순응하지 않으면 결국은 하늘이 재앙을 부른다고 한다. 하늘의 재앙은 자연을 망친 자에게 직접적으로 향하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말이다. 운이 나쁜 사람이 벼락을 맞는다고 하였다. 누군가가 매어둔 소를 도적질한 것은 지나가는 행인이었지만, 의심을 받는 것은 고을 사람들이니 억울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비록 성인이라 하더라도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니, 하늘과 땅처럼 위대한 존재에게도 사람들은 서운해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중용 12장]라고 하셨나 보다. 자연을 파괴한 이들은 선진문명국이지만, 가뭄과 재앙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 오히려 더 발생하고 있다.

 

可貞 无咎
끝까지 순리를 지키면(可貞) 허물이 없다(无咎)
  무망을 따르지 않는 재앙이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 것'과 같은 억울한 결과가 생긴다고 해서 곧 변신하여 천도(天道)를 어기려 하지 마라는 말이다. 허물(咎)은 길흉(吉凶)과는 다른 내적인 시각이다. 무망을 따른다는 것이 손해와 이익을 견주어 이해관계에 의해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이 바른 길이기에 무망의 길을 가고 천도를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无妄之疾 勿藥 有喜
자연적인 병통(无妄之疾)은 약을 쓰려 하지말고(勿藥) 기쁨으로 받아들여라(有喜).
  천리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병, 즉 노환으로 천수를 다하게 되는 것은 하늘의 뜻이니, 기쁘게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약이 개발이 되어도 불로초가 있을 수는 없다. 오히려 무의미한 연명을 위한 치료가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병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이 천리에의 순응이 아니라, 천수(天壽)가 다 하여 찾아오는 병을 거부하고 삶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삶의 집착을 벗어버리지 못하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귀신이 되어 남는다고 하였다.

 

无妄 行 有眚 无攸利
천리에 순응(无妄)하는 것을, 억지로 행하려고 하면(行) 재앙이 있고(有眚) 유리함이 없다(无攸利)
  행(行)하려는 것은 의욕 하는 것을 말한다. 그 역시 자연스러움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위(人爲)적인 것이다. 무망(无妄) 괘는 인간이 인위(人爲)로 만들려고 하는 탐욕에 의해서 천도(天道)가 무너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데, 천도를 따르는 것 조차 억지로 인위로 하려고 하니 더 모순적인 일이다. 재앙만 있을 뿐이며 유리할 것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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