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履虎尾 不咥人 亨
【初九】素履 往 无咎
【九二】履道坦坦 幽人 貞吉
【六三】眇能視 跛能履 履虎尾 咥人 凶 武人 爲于大君
【九四】履虎尾 愬愬 終吉
【九五】夬履 貞 厲
【上九】視履 考祥 其旋 元吉

  리(履)괘는 밟는다는 뜻이니, 아프게 하는 말을 뜻한다. 공자께서는 “말 할 때가 되지 않았는데 말하는 것을 교만이라 하고, 말할 때가 되었는데 말하지 않는 것을 숨기는 것이라 하고, 안색과 상황을 살피지 않고서 말하는 것을 맹목이라고 한다”[논어 제16편 계씨 제6장]고 하셨다. 침묵해야 할 때가 있고 말해야 할 때가 있다.

 

履虎尾 不咥人 亨
호랑이 꼬리를 밟았으나(履虎尾) 사람을 물지 않으니(不咥人) 성장(亨) 하게 된다
.
  호랑이는 사람을 물어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를 상징하니, 곧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던 절대 권력자로 보아도 될 것이다. 자로가 군주를 섬기는 것을 묻자 공자께서는 “속이지 말고, 거스를 수도 있어야 한다"[논어 제14편 헌문 제22장]고 하셨다. 절대 복종하는 것은 신하의 도리가 아니다. 꼬리를 밟는다는 것은 죽기를 각오하고 충언(忠言)을 하는 것을 말한다. 꼬리를 밟았는데도 물지 않았으니 성장하게 된다. 충심이 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중종때 조광조가 사간원 정언(正言)으로 시작해서 바른말로 신임을 받아 대사헌에 이른 것을 연상하게 한다.

 

素履 往 无咎
소탈하게 밟는다면(素履) 계속하여도(往) 허물이 없다(无咎)

  급하거나 거칠게 밟지 않는 것을 말한다. 공자께서 ‘말할 때가 되지 않았는데 말하는 것을 교만이라고 한다’는 가르침을 새기게 된다. 충분히 기다려주고 부득이할 때 비로소 꼬리를 밟아야 하니, 그렇지 않다면 무시하는 것이며, 배려하지 않는 것이다.

 

履道坦坦 幽人 貞吉
일관되게 밟아야 하니(履道坦坦) 그윽한 사람(幽人)이어야 끝까지 길하다(貞吉).

  일관성이 있는 그윽한 사람은 가치관이 곧게 서 있는 사람을 말한다. 곧기만 한 곧음은 옳지 못하다. 섭공이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아들이 고발하였다’며 고을 자랑을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우리 고을의 정직한 사람은 그와는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숨기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숨기니 진정한 곧음은 그 가운데 있습니다”[논어 제13편 자로 제18장]라고 하셨다. 공자는 판박이가 되는 학문을 경계하고 융통성을 강조하였으니, 공자의 직속 제자들은 개성이 모두 살아 있었다.

 

眇能視 跛能履 履虎尾 咥人 凶 武人 爲于大君
한쪽 눈이 없어도 볼 수 있고(眇能視) 절름발이도 밟을 수 있지만(跛能履) 호랑이 꼬리를 밟는다면(履虎尾) 사람을 물 것이니(咥人) 흉하다(凶)
.
  조화롭게 보지 못하고, 조화롭게 나아가지 못하니, 곧 안목이 없고 행동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 제 분수를 모르고 호랑이 꼬리를 밟는 것을 뜻한다. 호랑이가 물어버릴 것이다. 충심이 없기 때문이다.

 

武人 爲于大君
무인이라면 군주에게(于大君) 속해 있어야(爲) 한다
.
  절대 충성을 해야 하는 지위에 있는 자가 무인이다. 공자께서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직분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논어 제8편 태백 제14장]고 하셨으니, 무인이 꼬리를 밟는 것은 직분을 망각하고 나서는 것이라, 취지는 바르다 할지라도 군주에게는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履虎尾 愬愬 終吉
호랑이 꼬리를 밟는 것은(履虎尾) 놀라고 두려운 마음(愬愬)이어야 끝내 길하다(終吉).
  놀라고 두려운 마음으로 하는 것은 예(禮)를 지켜서 충언을 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께서 미운 사람이 있는지 묻자 자공은 “추측하여 다 안다는 사람, 불손함을 용기라 하는 사람, 들추어내는 것만 정직이라 하는 사람을 미워합니다”[논어 제 17편 양화 제24장]고 하였다. 두려움이 없는 용맹한 사람이 예(禮)와 의(義)를 망각하면 난을 일으키고 도적이 될 뿐이다.

 

夬履 貞 厲
거친 직언(夬履)은 그 끝이(貞) 위태롭다(厲).
 
  바른 말도 기술이 필요하다. 진정한 신하와 친구는 듣기 싫은 소리를 한다고 하지만, 욕을 하거나 나무라는 방법은 아니어야 한다. 자유가 말하길 “군주를 섬기면서 간언이 지나치면 부끄러움을 당하고, 친구를 대하면서 충고가 지나치면 소원하게 된다”[논어 제4편 이인 제26장]고 하였다. 시간을 두고 진중히 지켜보다가 그의 능력으로 알지 못하고 있거나, 고치지 못하겠다 싶은 것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부드럽게 권해야 하는 것이다. 훗날 원시유학이 추구했던 이러한 중용의 선을 벗어나 ‘충신은 욕을 당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거나 ‘죽음으로써 간한다’와 같은 거친 방법으로 변질되어 갔다.

  아랫사람에게에게 하는 충고도 마찬가지여야 할 것이다. 나이에 관계없이 인격은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자께서도 “젊은 사람은 경외해야 하니 어찌 내일의 사람이 오늘의 사람만 못하다 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사십, 오십세가 되어도 도리를 분명히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젊은 사람보다 경외할 필요가 없다”[논어 제9편 자한 제23장]라고 하셨다. 무조건적으로 나이로 들먹이게 된 까닭은 것은 공경(恭敬)의 의미를 잘못 전달해온 소인유(小人儒)들 때문일 것이다.

 

視履 考祥 其旋 元吉
밟는 것을 살펴(視履) 좋고 나쁨을 가려(考祥) 바로잡으면(其旋) 근원적으로 길하다(元吉).
  호랑이의 꼬리를 밟는 것은 아프게 하는 일이다. 그러나 궁극적 목적은 아프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바른길로 오도록 도와주려는 뜻이다. 그 도움은 눈높이를 맞추어 다가가야 한다. 시리고상(視履考祥)은 이렇게 밟으니 오히려 역작용이 일어나고 이렇게 밟으니 군주가 느끼게 되는지를 헤아려 보고 관찰해 보는 것을 뜻한다. 바른 말을 하더라도 기술(技術)이 필요한 법이니, 곧 공자께서 말씀하신 ‘안색과 상황을 살펴서 말하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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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