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3

« 2024/3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47

困 亨 貞 大人 吉 无咎 有言 不信
【初六】臀困于株木 入于幽谷 三歲不覿
【九二】困于酒食 朱紱方來 利用享祀 征 凶 无咎
【六三】困于石 據于蒺蔾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九四】來徐徐 困于金車 吝 有終
【九五】劓刖 困于赤紱 乃徐有說 利用祭祀
【上六】困于葛藟 于臲卼 曰動悔 有悔 征 吉

  곤(困)괘는 내적으로 부족하거나 지나쳐 중용에 곧게 서지(利) 못함을 뜻하는 괘이다. 공자께서 “도를 실천하지 않는 이유를 나는 안다. 지혜로운 사람은 너무 똑똑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모자라기 때문이다”[중용 제4장]라고 하셨다. 곤(困)은 외부적인 상황 때문에 겪게 되는 곤란이 아니라 전적으로 마음이 중용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곤경이다.


困 亨 貞 大人 吉 无咎 有言 不信
곤경(困)은 모자라거나(亨) 지나친(貞) 이유이니 대인(大人)은 길(吉)하고 허물이 없다(无咎) 여러 소리가 들리겠지만(有言) 신뢰할 수 없다(不信)
  곤경(困)은 열매를 맺지(利) 못하고 있는 것이다. 좌로 치우쳐 여물지 못했거나(亨) 우로 치우쳐 기울어(貞) 만나게 되는 것이다. 대인이 길한 이유는 대인은 중용(中庸)의 도를 알기 때문이다. 곤경에 부딪히면 여러 소리들이 들리게 마련이다. 경청할 소리도 있으나 도움의 소리가 아니라 잘난 척 스승을 자처하는 교만의 소리도 있을 것이다. 약자에게는 입을 열고 모여들고 강자에게는 귀를 열고 모여들기 때문이다.

 

臀困于株木 入于幽谷 三歲不覿
곤장을 맞아 엉덩이가 곤란을 겪으려 하면(臀困于株木) 어두운 골짜기로 들어가(入于幽谷) 삼년 동안 세상을 돌아보지 마라(三歲不覿).

  죄인으로 몰려 부당한 형벌을 받게 되는 곤경에 처하니, 세상의 도가 무너졌는데 나아가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시기에는 은둔 해야 하는 것이 중용이다.

 

困于酒食 朱紱方來 利用享祀 征 凶 无咎
먹거리로 인한 곤경에 처하면(困于酒食) 주황색가리개를 하고 찾아가(朱紱方來)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이롭다(利用享祀) 내세우면(征) 흉(凶)하나 허물은 없다(无咎)

  먹거리로 곤경에 처하니 곧 궁핍한 가난이다. 주불(朱紱)은 천자의 명으로 제후나 공경의 높은 지위의 신하가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가리개이다. 당장 주불을 받을만한 능력이 있는 자가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뜻을 지나치게 숭상하기 때문에 중용을 벗어난 것이다. 길흉(吉凶)은 외면적 시각이고, 허물(咎)은 내면적 시각이다. 자리를 달라고 내세우면 보기에 흉하지만 허물은 없다. 때를 기다리는 수(需)괘에서 말한 경제적인 기반 속에서 기다림(需于酒食)이어야 중용이기 때문이다.

 

困于石 據于蒺蔾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돌 위의 곤경(困于石)으로 가시덤불 속에서 잠을 청하니(據于蒺蔾) 집에 들어가더라도(于其宮) 그 아내를 만날 수 없을 것이라(不見其妻) 흉(凶)하다.
  돌 위에서 자는 것은 부부관계를 혐오하는 지나치게 고상함을 따르려는 곤경이다. 납가새(蔾)는 가시덤불을 이루는 한해살이 풀로 그 곳에서 잠든다는 것은 성욕을 참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지나치게 고상하여 마음을 닫았으니 그 아내가 만나주지 않을 것이라 흉하다. 동물적 본성을 지나치게 혐오하지 말아야 한다. 대소변을 누는 것도 고상한 일은 아니다.

 

來徐徐 困于金車 吝 有終
서서히 오는(來徐徐) 금차에서의 곤경(困于金車)은 궁색해지면(吝) 끝낼 수 있다(有終)
  금차에서의 곤경은 부자의 곤경이다. 서서히 오는 것은 이웃들의 수근거림이며, 그 까닭은 인색하기 때문이다. 재물을 베풀어 스스로 궁색해지면 그 곤경은 마무리를 할 수 있다. 부자는 욕심을 줄이고 그 재물을 나누는 것이 중용이다.

 

劓刖 困于赤紱 乃徐有說 利用祭祀
코를 베이고 다리를 절단 당하는(劓刖) 적불에서의 곤경(困于赤紱)은 천천히 기쁘게 하여야 하니(乃徐有說)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이롭다(利用祭祀)
  적불은 천자의 명으로 대부들이 제사에 사용했던 가리개이다. 주불(朱紱)을 받는 신하보다 낮은 계급의 신하이다. 코가 베이고 다리가 절단 당하는 형벌을 받은 까닭은 제 분수를 모르고 제사에 참석하라는 천자의 명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자의 명을 받들어 기쁘게 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이롭다. 공자께서는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논어 제8편 태백 제14장]고 하셨다. 본분을 넘어서는 것이기에 중용을 벗어난 것이다. 또한, 갑자기 기쁘게 하는 것은 변절자가 가지는 태도이니 서서히 고집을 꺾어 기쁘게 하는 것이 중용을 따르는 것이다.

 

困于葛藟 于臲卼 曰動悔 有悔 征 吉
칡덩굴처럼 얽히고 섥힌 곤경(困于葛藟)과 위태위태한(于臲卼) 곤경은 말하자면(曰) 후회가 움직일 것이라는 뜻이니(動悔) 뉘우치고(有悔) 극복하기 위해 나선다면(征) 길(吉)하다.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히고 섥히고 위태위태한 곤경이란 잘못을 즉시 바로잡지 않고 방치해 두었다가 그 문제가 걷잡을 수 업게 된 상황에 처한 것을 뜻한다. 그제서야 뉘우치게 될 것이니 극복하기 위해 나서면 길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때이기 때문이다. 공자께서는 “태어나면서 안다면 최고요, 배워서 안다면 그 다음이요, 곤경을 만나 배우면 그 다음이요, 곤경을 처해서도 배우지 않는다면 참으로 하등이다”[논어 제16편 계씨 제9장]고 하셨다. 뉘우치고 극복하기 위해 나서는 것은 곤경에 만나 비로소 느껴서 배우려고 하는 것이니 길하다.

:
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