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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에 해당되는 글 2

  1. 2013.01.04 제1편 학이(學而) 제12장
  2. 2013.01.04 제1편 학이(學而) 제11장
유자 말씀하셨네 [有子曰:]
예의 작용은 조화로움이 중요하다 [禮之用 和為貴]
선왕의 도가 아름다웠던 까닭은 [先王之道斯為美]
작고 큰 것이 조화를 이뤄 충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小大由之 有所不行]
조화를 위한 조화만 알고 [知和而和]
예로써 조절할 줄 모른다면 [不以禮節之]
순조로울 수가 없다(참된 조화가 아니다) [亦不可行也]

 

   이 장이 해석이 분분한 이유는 ‘어떻게 해라’는 선명한 실천행위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유가의 철학인 중용(中庸)을 설명하려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예(禮)는 내면의 실질과 드러난 꾸밈의 조화이다. 마음이 없는 예는 허례이며, 솔직한 마음을 꾸밈없이 다 발산하는 것도 무례이다.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중용(中庸)의 균형선을 지켜나가야 한다.
 
  그러나, 예라는 것은 곧 조화라고 하여 조화만을 추구하려는 꽉막힘도 문제이다. 아버지가 나쁜 일을 하려고 할 때 힘을 사용해 막아야 하는 행위가 필요할 수도 있다. 형식적 예에 어긋나고 부자간의 조화가 깨어지더라도, 근본의 예[실질]를 지키기 위해서 그래야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참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 장의 의미가 쉽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적이고 늘 그러해야 한다는 고정된[죽은] 원칙은 없다는 중용(中庸)의 조화라는 관념이 정립되면 좀 더 선명해 질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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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공자 말씀하셨네 [子曰:]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적에는 뜻을 살펴보고 [父在 觀其志]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지나온 행적을 살펴보고 [父沒 觀其行]
3년동안은 바꾸지 않아야 효라고 할 수 있다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이 장의 핵심은 ‘진실한 마음은 가벼울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삼(三)은 '오래다'는 의미로 고래부터 사용한 하나의 상징과도 같으니, 반드시 숫자적 3년이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라는 선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칼릴 지브란과 메리 헤스켈의 러브레터와 일기, 작품등에서 발췌하였다고 하는데, 이 책의 제목은 마치 명언처럼 유명해져 있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그 뒤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위대함에 견주어 보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작고 드러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생각과 뜻을 쉽게 바꾸려는 것은 부모님을 가볍게 여기고 무시하는 마음일 지 모른다. 생각이 달라도 살아서는 부모의 뜻을 꺾으려 하지 않고 지켜 보는 것,  돌아가신 후에는 지난 행적을 신중히 관찰해 보는 것, 그리고 단번에 바꾸지 않고 깊이 심사숙고 해보는 것은 모두 부모님의 일생의 뜻을 가볍게 여기고 경시하지 않는 것이기에 효(孝)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효(孝)는 마음이 실질이기에, 드러나는 외형적 행위에 집착하라는 뜻이 아니다. 반드시 3년을 그리해야 한다고 못박아 버리면 맹신적인 종교가 된다. 지켜야만 하는 법률 같은 효(孝)가 되어버린다. 한편, 그 시대에는 아버지의 역할이 주도적이기 때문에 부(父)라고 하고 있겠지만, 오늘날에는 부모님을 통칭하는 의미로 읽으면 될 것이다. 전하고자 하는 뜻이 남녀차별이 아니므로 그런 것에 민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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