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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 28. 23:41

하늘의 시간 건(乾) 간상(赶上)/보충(補充)2010. 9. 28. 23:41

맹자가 제나라에 전해오는 말을 소개하였다 [맹자 공손추 상 3.1]

출중한 지혜를 갖는 것보다 유리한 기회를 잡는 것이 낫고,
좋은 농기구를 갖는 것보다 적절한 농사철을 기다리는 것이 낫다.

시간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다른 경우가 많다.
겨울에 씨를 뿌리면 소용이 없는 법이다.
그래서, ‘미숙할 때 움직이려 하지 말라’는 잠룡물용(潛龍勿用)과
‘물러나야 할 항룡일 때 물러나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 생긴다’는
항룡유회(亢龍有悔)는 오늘날에도 자주 인용하는 고사성어가 되었다.

오늘날 사람들이 참 많이 쓰는 말이 있다. “바빠서 말이지…”
옛날 사람들도 이렇게 바쁘게 느끼며 살아갔을까? 옛날의 노래, 옛날의 춤과 같은 문화적 산물로 유추해보면 일견 오늘날보다는 여유로운 듯도 한데, 옛 글들을 보면 역시 바쁘다는 글이 많다. 장자가 말했다.[장자 제물론]

사람은 만물과 서로 다투기만 하고
말달리듯 지나가면서도 멈추고자 하지 않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종신토록 허덕여도 성공을 볼 수 없고
고달파 쓰러지면서도 되돌아가야 할 바를 알 지 못하니
참으로 애처롭지 않겠는가!

과거에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오늘날 군대는 천국일거라 여기기도 하지만, 더 좋은 환경 같은데도 여전히 힘들어 하고 자살을 하기도 한다. 옛날의 군대나 오늘날 군대나 옛날의 시간이나 오늘날의 시간이나 힘들고 바쁘기는 마찬가지란 말일까? 조선시대에도 행복하게 살았던 여인들이 있고, 풍족한 오늘날에도 불만 속에 사는 여인들이 있다.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와의 갈등’은 드라마나 소설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던 얘깃거리였다.
돈 많지, 잘 생겼지, 마음씨 좋지,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A를 마다하고, B가 좋다는 아이 때문에 부모는 경악한다. 단 하나만 B보다 A가 못한 것을 말해보라며 애원하기도 한다. “완벽한데도 정이 안 가!”     
공자가 말했다.

삼군대장의 권력을 빼앗을 수는 있겠지만, 일개 보통사람의 그 의지를 빼앗을 수는 없다 [논어 9.26]


사람은 합리적 사고로만 결정하고 느끼는 로봇이 아닌 까닭에,
하늘의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일정하지만, 사람이 만나는 시간의 속도는 일정할 수 없다.
결국 변화(易)의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봄, 여름, 가을, 겨울 같은 자연의 변화는 저절로 변하는 것이며,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 같은 ‘느끼는 변화’는 바깥이 아니라 자기 마음 내부에서 변화하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유명한 광고문구가 있다.
더러운 세상을, 배려심이 없는 남편을, 말 안 듣는 아이에게 변화하라고 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변화(易)를 원한다면 자기에게서부터 변화를 찾아가야 한다.
이 더러운 세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을 행복하다고 하며 감동하는 사람도 있으니,
과연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같은 세상을 두고,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달리 느끼고 있는 것이다.
 
바꿀 수 없는 자연의 변화(易)와 바꿀 수 있는 느끼는 변화(易)를 분별하고,
바꿀 수 있는 변화라면, 나로부터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 주역이 말하는 변화(易)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주역은 미숙한 잠룡일 때는 성급히 움직이려 하지 말아야 하고,
물러나야 할 항룔일 때 물러나지 않으면 후회를 남긴다고 가르치는데,
과연 잠룡인지, 항룡인지는 어떻게 안다는 것일까?

본래, 스스로 잠룡인지, 항룡인지를 알면서도 서둘거나 고집하는 경우만을 주역이 상정한 것은 아니다.
남들과 세상은 모두 다 잠룡인 줄 알고, 항룡인 줄 아는데,
자기 스스로는 잠룡이 아니라고 여기고, 항룡이 아니라고 여기는 경우도 있다.
역시 마음이 붙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적당한 시간이 되었다는 것, 밥을 먹어야 할 때인지, 잠을 자야 할 때인지는 본래 스스로 가장 잘 안다.
그러나, 먹지 않고 사는 ‘독립영양인간’이 있다는 뉴스를 본 후 안 먹다가 죽었다는 사람도 있더라.
신이 부르시니 가야 할 때가 되었다며 자살했던 신도들도 있더라.

결국, 주역의 판단은 중용(中庸)의 철학을 향해서 흘러간다.
나를 돌아보지만, 나만 보는 것이 아니다.
너로부터 돌이켜도 보지만 너의 시선에 전적으로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
치우치지 않고 기울지 않는 중용(中庸)이라는 균형의 기준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적당한 때를 판단해야 하는 것은, 주관(나)에서 시작하여 객관(너)으로 판단하며 내가 감수한다(나)는
[나 → 너 → 나]의 3단 구조를 갖는다.

참고로 이 3단 구조는 유가철학의 큰 근본이다. 논어의 제1편 학이 제1장을 예로 들어본다.

배워서 때때로 익혀보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먼 곳일지라도 찾아주는 벗 생기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으리니 어찌 군자이지 않겠는가?

[나의 기쁨→너와 더불어 함께하는 즐거움→자존을 잃지 않는 나]
유가철학의 개념들은 모두 이 [나 → 너 → 나]의 구조로 얘기할 수도 있다.

왜 효도를 하나요? [내가 기쁘기 때문입니다 → 부모님께서 알아주시면 함께 즐겁구요 → 부모님께서 몰라주셔도 여전히 기쁘며 원망이 생길 리 없습니다] 부모님께서 알아주기를 바라고 효도하겠다는 것이 아니니까요... 

【爻辭】


元亨利貞
(시간이 맞아야)
씨앗에서 성장하고 열매를 맺고 죽게 된다

【初九】

潛龍勿用 잠룡일 때 움직이려 하지 말라
【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야 이롭다
【九三】 君子 終日乾乾
夕惕若 厲 无咎
군자가 되어 종일 최선을 다하고
어두움을 경계한다면 위태로울지라도 허물이 없다
【九四】 或躍在淵 无咎 도약을 신중히 헤아리며 연못 속에 있어야 허물이 없다
【九五】 飛龍在天 利見大人 하늘을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야 이롭다
【上九】 亢龍有悔 오르려고만 하는 용은 후회가 있다
【用九】 見群龍无首 吉 용의 무리에 우두머리가 없으니 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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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01

乾 元亨利貞
【初九】潛龍勿用
【九二】見龍在田 利見大人
【九三】君子 終日乾乾 夕惕若 厲 无咎
【九四】或躍在淵 无咎
【九五】飛龍在天 利見大人
【上九】亢龍有悔
【用九】見群龍无首 吉

  하늘 아래의 모든 생명은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씨(元)로부터 시작해, 꽃을 피우고(亨), 열매를 맺고(利), 소멸하게(貞) 하였다. 모든 생물(生物)이 이 변화의 법칙을 순리대로 따를 수 있을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싹이 텄으나 꽃이 피지 않는 것도 있고, 꽃이 피었으나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도 있구나”[논어 제9편 자한 제22장] 씨를 뿌릴 때가 있고, 열매를 거둬야 할 때가 있다. 겨울에 씨를 뿌리면 소용이 없으니, 무슨 일이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 시간만 맞추면 순조로울까? 비옥하지 않은 모래밭에 씨를 뿌리면 역시 소용없다. 무슨 일이든 무슨 생명이든 마땅한 장소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때가 맞고 자리가 맞으면 모든 것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되는가? 봄에(시간) 비옥한 땅에(장소) 씨를 뿌려도 가뭄이 들면 소용이 없다. 하늘이 보살펴야 한다. 동물은 자존능력을 갖출 때까지는 어미가 젖을 먹이고 지켜주어야 한다. 시간, 공간 , 보살핌(사랑), 그것으로 완전할까? 사고(事故)가 없어야 한다. 토끼 새끼가 호랑이의 먹이가 되고, 호랑이 새끼가 절벽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그럼 그러한 사고는 어찌하여 생길까? 『중용』의 "하늘은 만물을 살리심을 그 재질에 따라 두터이 하시니, 바르게 심어져 있으면 북돋워주고 기울어진 것은 엎어버린다"[중용 제17장]는 가르침을 언급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바른 길을 가도록 애쓰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乾 元亨利貞
시간(乾) 아래의 인간은 씨앗(元)으로부터 성장하고(亨) 열매를 맺고(利) 죽게(貞) 된다
  시간은 영원불변하며 완전하다. 시간은 변치 않고 영원히 흐르지만, 그 시간을 맞이하게 되는 생물은 영원한 것이 없다. 영원한 하늘의 시간 앞에서 모든 것은 원형리정의 이치를 따라 변한다. 그러나 순탄하게 그 변화의 법칙을 따르기 위해선 시간에 맞추어 씨를 뿌려야 한다. 원형리정(元亨利貞)은 주역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이며, 해석여하에 따라 전체의 의미를 다르게 하는 부분이다. <여기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潛龍勿用
잠용(潛龍)일 때 움직이려 하지 마라(勿用)
  물에 잠겨있는 용(潛龍)은 아직 나아가야 할 때를 만나지 못한 용이다. 용(用)은 동(動)의 뜻으로 해석한다. 잠용은 나아갈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새기면 될 것이다. 즉, 준비하며 기다려야 할 때를 말한다.

 

見龍在田 利見大人
나타난 용이(見龍) 밭에 있으니(見龍在田) 대인을 만나야 이롭다(利見大人)
  밭은 용이 있어야 할 제 자리가 아니다. 용은 하늘을 날아야 한다. 씨를 뿌릴 시간이 도래하였어도 모래에 뿌리면 소용이 없다. 제 자리를 잡아야 한다. 대인(大人)은 도움을 주는 사람을 말한다. 즉, 현룡은 도움을 받아야 할 때를 말하고 있다.

 

君子 終日乾乾 夕惕若 厲 无咎
군자(君子)가 되어 종일(終日)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乾乾) 어두움(夕)을 경계한다면(惕) 위태로울지라도(厲) 허물이 없다(无咎)
  때를 만나고(天), 바른 자리를 잡고(地), 사람을 도움을 얻은(人) 천지인(天地人)의 합일이 이루어졌다고 만사 순탄할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주역의 가르침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고 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하였다. 힘써 배워야 할 때를 말한다. 한편, 주역에서 말하는 군자(君子)는 어떠한 사람일가? <여기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或躍在淵 无咎
연못에서 과단하게 비상해야(或躍在淵) 허물이 없다(无咎) 
  혹(或)을 문언전의 해석대로 ‘의심하다’는 의미의 혹(惑)으로 해석하면, 만반의 준비가 완료 되었더라도 신중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의 가르침이 된다. 한편, 혹(或)은 ‘갑작스럽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과단성있게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의 가르침이 된다. 지금은 나아가야 할 때다. 신중해야 하는가, 과단해야 하는가? 여기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자기로부터 찾아야 할 해답일 것이다. 과단성이 부족한 나는 후자의 의미로 새기며 읽는다.

  

飛龍在天 利見大人
하늘을 날고 있으니(飛龍在天) 대인을 만나야 이롭다(利見大人)
  거칠 것이 없는 상황이다. 말하자면 전성기이다. 열매를 맺은 시기(利)이다. 그렇지만 도와준 대인(大人)을 만나야 이롭다고 한다. 전성기가 도래하였으니 그 복을 내가 누리는 것에만 써야 할까? 사람은 하늘(시간)과 땅(자리)에게 성취한 결실을 나누어 보답해 줄 수는 없지만, 나를 도와준 사람에게는 내가 이룬 결실을 나누어 보답해 줄 수 있다. 은혜를 잊지 말라는 말이다. 재아가 3년상을 1년상으로 바꾸겠다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식으로 태어나 최소한 3년은 되어야 보살핌이 없어도 살 수 있게 된다. 재아도 부모에게 최소한 3년의 보살핌은 받지 않았더냐?"[논어 제17편 양화 제21장]. 이미 갖춰지면 고마움을 쉬이 잊어버리기도 한다. 비룡은 베풀어야 할 때를 말한다. 

 

亢龍有悔 
오를려고만 하는 용(亢龍)은 후회가 있다(有悔)
 
  문언전은 항(亢)을 ‘나아가는 것만 알고 물러나는 것을 알 지 못하며, 존재만 알고 없어질 것을 모르고, 얻는 것만 알고 내 놓을 줄을 모른다’고 설명한다. 모든 것은 변화하기 마련이며, 모든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물러날 때가 되었다면 놓아야 한다. 때가 되면 부모의 지위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이 순리이다. 부모의 역할에서 내려오지 않으려 하면, 자식은 독립하지 못하고 마마보이가 되어버린다. 사람은 본시 영원을 갈망한다. 영원한 삶을 꿈꾸고, 영원한 사랑을 꿈꾸고, 영원한 안락을 꿈꾸곤 한다. 그렇지만,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은 흐른다」는 하늘의 법칙 밖에 없다. 그 하늘아래에서 모든 것은 원형리정의 법칙에 따라서.변한다. 항룡은 물러나야 할 때다.

 

見群龍无首 吉
용의 무리에(見群龍) 우두머리가 없으니(无首) 길(吉)하다
  세상에는 잠룡(潛龍)만 있지도 않고, 현룡(見龍)만 있지도 않고, 비룡(飛龍)만 있지도 않고, 항룡(亢龍)만 있지도 않다. 모두 함께 더불어 세상을 이룬다. 그 차이는 때와 때의 선택에 따라 다른 모습에 불과할 뿐, 모두가 같은 용이다. 우주의 시간에서 볼 때는 불꽃처럼 사라지는 찰나의 시간만 가진 별 다를 것 없는 생물이다. 그러니 나 잘났다고 머리를 내밀지 마라는 뜻이다.

  공자께서 소인을 하찮게 여기라고 소인과 군자를 구별한 것은 아니었다. “군자는 의로움을 생각하고 소인은 이로움을 생각한다”고 하시고는 그러니 "소인을 우선 이롭게 해 주어야 한다"고 하셨다. 소인을 멸시하라는 뜻이 아니라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공자께서는 「사랑」을 말한 것이었지 「미움」을 말한 것이 아니셨다. 번지가 인(仁)을 여쭈자 공자 말씀하시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愛人)" 지(知)에 대해 여쭈자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知人)"라고 하셨다[논어 제12편 안연 제22장]

 

oon

  첫괘, 건(乾)괘의 효사에서 쉽게 구분이 되지 않는 용어가 제법 있다. 길(吉)한 것과 흉(凶)한 것, 이로운 것(利), 허물이 없는 것(无咎), 후회가 있는 것(有悔), 힘들고 고생스러운 것(厲) 등등, 구분히 모호한 한자어가 등장한다.  <여기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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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2009. 8. 26. 20:14

효(爻)의 순서와 명칭 간상(赶上)/보충(補充)2009. 8. 26. 20:14

효는 맨 밑에서부터 순서대로 올라간다.
그래서 밑에서부터 순서대로 1효,2효, 3효, 4효, 5효, 6효라고 칭하기도 하고,
처음효와 마지막 효를 처음효, 2효, 3효, 4효, 5효, 꼭대기효 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편적으로는 『역전』의 명칭을 존중하여,
음을 뜻하는 6양을 뜻하는 9를 붙여,

Xb91DllLGS

처음효는 초육(음일때), 초구(양일때)
둘째효는 육이(음일때), 구이(양일때)
셋째효는 육삼(음일때), 구삼(양일때)
.
.
여섯째효는 상육(음일때), 상구(양일때)
라고 칭한다.

다만,
모두 양효인 건(乾)괘는 전체를 아우르는 용구(用九)를 하나 가지고 있으며
모두 음효인 곤(坤)괘는 전체를 아우르는 용육(用六)을 하나 가지고 있다.

 

오른쪽 이미지의 감(坎)괘를 예로들면, 둘째효와 다섯째효가 양이므로 9가 되며,
첫째효, 셋째효, 넷째효, 마직막효가 음이므로 6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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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